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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체험과 이해 2편: 무한한 가능성

여러분 인생에 얼마나 많은 무한한 가능성이 지금 보이고 들리고 가능성이 열려 있는지 아십니까? 무한한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나 스스로 사장시켜 버려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걸 통해서 내 필터를 통해서 내 표상의 필터를 통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단 말이에요. 자기 식대로만 보는 거예요.

 

인식의 한계

그래서 진실을 못 봐요. 어쩌면 우리 인생에 수많은 기회가 왔었을 수 있어요. 친구가 우리 좋은 모임이 있는데 한번 가볼래? 우리 좋은 스님이 오신데 그 절에 한번 가서 법문 좀 들어볼래? 그런 기회가 있었을지 몰라요 옛날에. 그런데 그때는 내 인연이 안 돼서. 불교는 무슨 너 절에 다녀? 젊은 사람이 뭔 절이야. 그러고 넘겼을 수 있단 말이죠.

 

아직 인연이 안되면, 시절 인연이 안되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고, 그 가능성들이 나에게 항상 손을 뻗치고 있었지만, 그걸 내가 붙잡지 못한단 말이에요. 시절 인연이 안되고, 내 마음에서 마음이 열리지 않고, 내가 특정한 상, 옷만을 취해가지고, 이거를 진짜라고 여기고, 이것만이 진짜라고 여기고, 이것만을 진짜라고 하면서 살게 되면, 자기, 자아가 취해놓은 것만을 진짜라고 여기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자기는 죽었다 깨어날 수 없는 거예요.

 

왜? 내가 취한 것을 자기라고 여기잖아요. 이거는 상혼이라는 게 어떻겠어요? 인연 따라왔다 가는 거예요. 어떤 표상이 좋다는 게, 저도 옛날에 어릴 때 성모 유치원 나왔거든요. 성당 유치원 나왔어요. 그때는 불교는 몰랐어요. 또 중학교 때, 초등학교 때, 제가 교회도 다닌 적이 있어요. 교회 크리스마스 날 가서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이런 적이 있어요. 그때는 불교 몰랐죠. 중2 때 그 스님을 만난 이후로 제가 완전히 그냥 불교에 하기 시작했지만, 그러면 불교라는 종교가 저는 몰랐단 말이에요.

 

어릴 때. 그렇게 내 인생에 없었던 것들, 그것들이 언제 등장할지 몰라요. 그게 원래 없었던 게 아니란 말이죠. 그러니까 무엇이든 모든 가능성이 사실은 내 눈앞에 완전히 열려 있거든요. 여러분, 유튜브만 틀어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자꾸 보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는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요. 그런데 그건 때가 되어야 인연이 맺어지죠.

 

내가 이렇게 특정한 표상을 붙잡아서 이것만 쥐고 있는 동안은, 집착하고 있는 동안은 특정한 생각, 특정한 표상, 상 이것만 쥐고 있는 동안은 이거 아닌 것들은 관심이 없는 거예요. 이거 아닌 것들은 가짜라고 느껴지고. 그러니까 그 무한한 가능성이 나에게 올 수 없단 말이죠. 그럼 이 모든 상이 없으면 어떻게 볼까요?

 

우리는 세상을 이 표상으로 내식대로 이렇게 걸러서 보잖아요. 세 강경, 표상이라는 세강경 생각을 가지고 걸러서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걸러서 바라보는 이것이 없으면 어떻게 볼까요? 그저 보이는 대로 볼 거예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겁니다. 불교는 이 공부하는. 거예요. 비본질적인 것, 진짜가 아닌 것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걷어내자는 거예요.

 

쉽게 말해 실상을 본다, 실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반야지혜라고 한다고 했잖아요. 실상을 보는 게 따로 있느냐? 따로 없습니다. 실상이라는 게 따로 없어요. 부처가 따로 있느냐? 부처가 따로 없습니다. 열반 해탈이 따로 있느냐? 열반 해탈은 따로 없어요. 방편으로 만들어낸 거예요. 중생에게, 중생은 뭐가 중생이냐면 괴로운 사람이 중생이죠. 괴롭다고 망상을 부리는 사람이 중생이에요.

 

분별하니까 괴로운데 분별을 일으켜서 그걸 진짜인 줄 알고 취하니까 괴로운 거거든요. 괴로운 사람, 분별하는 사람에게 괴로움을 없애고 살 수 있어. 괴로움에 지금 묶여있잖아. 그 생각에 묶여있잖아. 그 분별의 상해, 상온, 수온, 오치원에 묶여있잖아. 그걸 너라고 생각하면 묶여있지 않니? 거기서 풀려날 수 있다. 그 묶인 곳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걸 알려주는 거예요.

 

묶여 나는 데서 풀려나면, 분별해서 놓여나면, 집착해서 풀려났을 때 그걸 이름에서 열반이니, 해탈이니, 자성이니, 실상이니 이렇게 말한 거지. 분별을 깨는 허상이 허상인 줄 바로 보는 그걸 이름에서 실상이라고 하고 진실이라고 하고 부처라고 한 거지. 부처는 따로 없어요.

 

여러분이 진실을 눈 떠서 부처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와! 나는 드디어 부처가 됐다. 어제까지 없던 부처를 나는 오늘 만났다. 쟁취했다. 얻었다. 남들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나는 오늘 드디어 가졌다. 이렇게 되지 않는단 말이에요. 어떻게 될까요? 이거라고?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이거는 모두에게 다 있는 건데? 내가 단 한 번도 이거 없이 산 적이 없는데? 늘 이걸 쓰고 살았는데? 늘 이거였는데, 정말 이거라고?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말이에요.

 

새로운 걸 얻어낸 게 아니에요. 깨닫고 나면 지금 이대로라니까요. 그래서 깨닫고 나면 이대로인 거예요. 다만 안목이 달라진 것이지 현실이 달라지는 게 아니에요. 깨닫고 나면 갑자기 막 하늘을 붕 뜨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아프던 몸이 다 낫는 것도 아니고, 인연 따라 생겨야 될 괴로움이 갑자기 하나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 현실 이대로 진실이었구나.

 

아, 지금 이것이 실상이었구나. 내가 지금까지 전부 다 허상만 보고 살았구나. 이 표상을 진실인 줄 알고서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그것을 내가 상으로 취해가지고 쥐고 살았구나. 이 생각이 옳다, 저 생각이 옳다. 저 생각은 틀렸다. 이 생각은 옳으니까 집착하고, 저 생각은 틀렸으니까 버려야 된다고 느끼면서 모양에 취해가지고 내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취사 간택해서 만들어 놓은 그것을 내가 쥐고 살았구나.

 

현실 바라보기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약견 재상 비상이면 즉결 여래 범소유상 개시 허망이라고 하잖아요. 상으로 취해서 사진 찍어가지고 내가 이거야 저거야라고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 그건 진실하지 않단 말이에요. 세상은 전부 다 자기 생각이에요. 자기 생각, 자기 표상 여러분 생각이 없으면 괴로움이 있을까요?

 

한 생각 일으켜야 거기서 괴로움이 드러나요.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그건 괴로움이 없습니다. 내가 괴롭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전부 상 아니에요, 상? 상을 취하니까 생각나는 거예요. 우리가 괴롭다고 할 때 그 괴로움은 전부 다, 자기 마음속에 그 모양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상을 만들어 놔서 그 상을 진짜라고 취하기 때문에 범소유상은 개시 허망인지 모르고 모든 상은 전부 다 허상이에요, 허상.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에다가 내가 '이거는 좋다.' 삶의 경험을 통해서 '이건 좋은 거' 하고 취하고 '저건 버려야 할 거' 하고 버리려고 애쓰고 취사 간택하면서 모양을 만들어 놓으면 모양은 반드시 좋거나 나쁘거든요.

 

이 상원에 의해서 나중에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수호, 느낌, 감정과 상원, 생각, 표상 이 두 가지 기본 데이터베이스 감정적이고 이지적인, 느낌과 생각이라는 이 두 가지 마음의 기본 데이터베이스가 모여가지고 이것이 이제 내가 최종적으로 의식하거나 최종적으로 삶을 결정 내리는 최종적으로 의식하는 분별심 그리고 최종적으로 삶을 어떤 행위를 하려고 의도를 일으키고 결정을 내리고 업을 짓는 이 '업을 짓는' 작용을 '행운이라고 불러요', '행운.' 수상 행 식 할 때 '행운.' 그리고 이 수원과 상원을 기본 데이터베이스로 해서 최종적으로 대상을 파악해서 아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 이걸 '식원'이라고 불러요

 

'식, ' 의식, 인식, '식'이라고 부르거든요. 그러니까 세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분별하는 데 있어서 마음을, 대상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바로 수원과 상원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수원과 상원이 실제 하지 않는 것인데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거거든요.

 

지난 시간 우리 수원 공부했듯이 무명 행식, 명생 유급 촉수 하잖아요. 18개가 눈 깊은 현음뜻과 색상 미촉법이 접촉해서 의식이 일어날 때, 그때 18개가 화합할 때 '수상사'가 함께 일어난다 그래요. 교리적으로 보면 수상행이 함께 일어난다. 즉 수원과 상원과 행운이 같이 일어난단 말이죠.

 

눈으로 보면서, 보자마자 자기는 표상으로 그걸 걸러서 보잖아요. 자기식대로. 그렇게 수원과 상원, 느낌과 표상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계속 켜켜이 쌓아놓고 있단 말이에요. 오치원으로서 내가 붙잡고 있다가 항상 이것을 통해서 걸러서 세상을 느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느끼는 것,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만 그렇게 느끼고 나만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나에게만 쌓여있는 오치원이니까.

 

그러니까 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세상의 나 하나예요. 내가 바라보는 이 세상, 이 우주의 나 하나예요. 있잖아요? 내 수온과 상온과 행온과 식온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 이 우주 이거는 이 세상의 자기 우체원에 밖에 없어요. 부처님은 오온이 이 세상 전체라고 했거든요?

 

이 우주법계 전체를 다섯 가지로 나눈 게 오온이에요. 이 세상은 오온이다. 이렇게 얘기했단 말이에요. 여러분이 여러분 밖에 세상이 따로 있는 건 줄 알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오온으로 쌓아놓은 거, 이게 이 세상 전부예요. 그러니까 세상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우체원으로 이렇게 쌓아서 만든 세상. 그걸 내가 창조한 거예요.

 

자기 세상을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내가 험하게 만드는 이 세상은 다 사라져요. 근데 우리는 진짜 진실, 진실한 세상에 살지 못해요. 내가 만든 이 우체원의 세상 속에서만 살아요. 내가 만든 느낌의 굴레, 내가 만든 생각의 굴레 여기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요. 진실은 못 봅니다.

 

이 필터를 가지고만 보니까, 우체원을 가지고만 보니까. 그러니까 똑같은 걸 보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해요. 좋은 느낌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싫은 느낌이 일어나요. 등산 가자. 이러면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하잖아요.

 

인식과 행동 상호관계

똑같은 일인데, 왜? 수행은 느낌이 다르니까, 등산에 대한 느낌이 다르거든요. 등산에 대한 생각이 다르거든요. 똑같은 정치적인 판단을 보고 어떤 사람은 최악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최상이라고 하거든요. 입이 다르니까, 느낌과 생각의 필터가 다르니까, 우체원으로 쌓아놓은 것이 다르니까.

 

근데 우리는 이 온 느낌과 생각, 이곳으로 인연 따라 조건 따라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 이걸 진짜라고 착각한단 말이에요. 진짜라고 착각해서 이걸 쥐고 집착해서 내가 생각으로 이건 좋은 거니까 더 가져야 돼, 이건 싫으니까 버려야 돼라고 내가 생각으로 취했을 뿐인데. 그 걸을 진짜라고 믿어서 나는 지급 못하면 죽을 것처럼 괴로워한단 말이에요.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은 나한테 대들면 안 돼. 이 걸을 진짜라고 믿는 그 한 생각을 너무 강렬하게 쥐고 있으면 너무 크게 대립한단 말이죠.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는 정견의 눈이 생기지 않는단 말이죠. 그래서 이 우체원이 공하다는 사실을 조견하는 것, 그게 바로 조견, 오온, 계공이거든요. 아, 느낌이 공하다라는 것을 조견, 본다는 거예요.

 

상온, 생각이, 내가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면서 쥐고 살아왔던 생각 난 이렇게 살아야 되고, 세상 사람들은 이래야 돼. 인생은 이렇게 펼쳐져야 되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성공이야, 저렇게 하는 건 실패야. 세상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면 안 돼, 나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 이런 오류와 자기 생각들이 있잖아요. 자기가 취해온 생각이나 어떤 느낌들에 집착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어느 날 문득 이런 친구들이 있거든요. 정말 어릴 때는 20대 때, 20대, 30대 친구들이 취직한 지 얼마 안 돼가지고 3년, 5년도 안 됐는데 겉멋이 들어가서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외제차를 엄청 비싼 차를 사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래서 한 달에 그 차에 들어가는 돈만 70만 원, 80만 원, 100만 원 드리는 이런 친구들이 있어요. 근데 그게 좋대요, 남들의 시선이 간지 나는 거예요. 그 느낌을 막 누리며 사는 거예요, 그 느낌이 너무 좋대요.

 

근데 그 느낌을 처음에 막 좋다가 그러고 살아보니까 돈이 너무 궁핍해지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다가 몇 년 그러고 타고 다니다가 이거 헛값에 팔고 엄청 싼 중고차를 사고 다녀요. 깨달은 거죠, 아 느낌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이제 깨달은 거예요. 수업료 주고 나서 몇 억짜리, 몇 천만 원짜리 비싼 차를 사보고 나서. 그러니까 그 감정 하나, 느낌 하나의 순원. 느낌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수천만 원을 마땅히 버린다니까요.

 

물론 그걸 통해서 나중에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내가 취해놓은 오칠 원 느낌 하나. 상원 생각 하나, 이거 하나가 갑자기 꽂혀요. 어떤 분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주식으로 망해가지고 우울증 걸린 분이 계셨거든요. 그분이 상담을 하는데, '와,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 깜짝 놀랐어요.

 

이분이 처음에 주식을 하다가 망한 계기를 얘기해 주시는데, 주식을 잘 몰랐는데 너도 나도 주식으로 잘 된다고 하니까 몇 번 해봤더니 돈을 확 벌더래요. 그래서 그게 너무 안타깝더래요 이거, 내가 큰돈 넣었으면 더 크게 벌 건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러다가 누구 주식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자칭하는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누구한테, 나한테 얘기한 것도 아니에요. 누구한테 아주 비밀인 것처럼 이 주식 몰빵 하면 대박 난다는 얘기를 주워 들었대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내가 꽂혀있을 때라, 주식에 돈에 꽂혀있을 때니까 욕심에 눈이 멀어있을 때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지나가면서 했던 말 한마디가 강렬한 인상으로, 상원으로, 표상작용으로 확 사진 박혀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 여기 꽂힌 거예요, 그래가지고 거기 쉽게 말해 몰빵을 했다는 거예요. 그랬다가 직업도 멀쩡하신 분인데요.

 

우울증이 와서 너무 큰돈을 날려가지고 우울증이 와서 한동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보세요, 상원 하나 집착한 것이 나를 지옥으로 나락으로 몰아붙인다니까요. 그게 진실인 줄 아는 줄 알아야 되는데,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되는데. 한 번 꽂히니까 수원이든 상원이든 내가 취한 거에 한 번 꽂히니까 그게 내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된단 말이죠. 그걸 진실하다고 여길 것이 아니라, 사로잡혀서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어떤 수원이든 어떤 상원이든 과도하게 꽂혀서 집착하는 일이 없어진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오치원에 휘둘리는 일들이 사라진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진실을 보는 정견의 안목이 밝혀지는 것이죠.